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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861

삶과 죽음, 법, 종교

작성일
2020.09.19
수정일
2020.09.19
작성자
송오식
조회수
240

 

삶과 죽음, , 종교

    

송오식 교수(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 죽음,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굴레

    

  인간이 태어나서 피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세금이요 다른 하나는 죽음이라고 한다. 자고로 국가는 수단 방법을 다하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고자 하였다. 심지어 죽은 사람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하기도 하였다. 또한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사건이다.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한 예수를 제외하고 유사 이래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진시황을 비롯한 많은 권력자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만 헛수고에 그쳤고 아직까지 인류는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담고 산다. 이는 아마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외침(外侵)과 약탈 등으로 서민들의 심정이 자연스레 언어에 배었으리라. 그런데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는 이해가 되는데 심지어 배불러 죽겠다, 예뻐 죽겠다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죽음 친화적인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최근에는 말로만 죽겠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한국사회에 만연하면서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한국인 스스로 자신을 성찰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한국사회의 변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동안 압축적인 고도성장과 급진적인 민주화를 통해 정치경제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경제적, 정치적 변화의 폭과 깊이가 급격하게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전통적인 규범이나 가치와의 간극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작년에 서울대 사회학과의 이재열 교수가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라는 다소 도전적인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젊은이들에게 헬조선노오오오력이라는 단어로 한국의 실정이 각인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현재 한국사회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대응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 인권으로서 생명

    

  그런데 죽겠다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인 자살이 유독 한국사회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OECD 국가평균의 2.5배 이상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법학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먼저 생명과 자살이 어떠한 법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쓰고자 한다.


  먼저 한 생명(영혼)은 천하보다 고귀하다. 그 자체가 한 우주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자체이다. 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생명권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대국가 태동시 헌법이 제정될 때 천부인권설, 즉 인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연유한다는 설은 기본권이 국가나 군주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근거로서 가장 유력하게 주장되었다. 이제 국가라 할지라도 국민의 기본권은 침해할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생명권은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현대국가에서는 국가가 소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하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헌법의 기본정신은 죽음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다시 말하면 자살이든 타살이든 자연적이 아닌 죽음에 대해 국가는 다른 어떤 기본권보다도 국민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자살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고자 2011년에야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을 제정하였고 2012331일에 시행하였다. 또한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신설되는 등 자살예방과 관련된 국가적인 책임을 구체화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정책실행을 위한 기초가 마련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동법의 주안점은 국민의 생명권보호의 수범자가 국가라는 것을 밝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여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권은 출생부터 사망시까지 인정된다. 더 소급하여 출생 전부터 생명권이 인정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태아의 생명권이다. 법의 세계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여 형법에서는 낙태죄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94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 이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한 경우인데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것이다. 태아의 생명권 존중이란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결정이기도 하다.


  사람의 사망시점에 대하여 전통적인 견해는 맥박종지설에 의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기이식을 위하여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면 비록 심장이 뛰고 있다 할지라도 전문가의 뇌사진단을 받아 사망으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법률로서 절차와 사망시기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위가 사람마다 다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초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수명은 날로 연장되고 있고 연명의료장치에 의존하여 자연사망보다 사망시기가 늦춰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특히 그런 장치에 의존하는 사람이 의식이 없는 경우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고 존엄사의 문제가 등장한다.


  존엄사문제가 사회의 이목을 받은 것은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의료진이 퇴원시켜 환자가 사망한 경우 의료진의 환자의 생명에 대한 법적 책임이 문제가 되었다. 1997년에 보라매병원 중환자실로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 머리를 다친 한 환자가 와서 치료를 받다가 치료비 등의 문제로 환자의 아내가 퇴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의료진은 당시 퇴원하면 환자는 얼마 못가서 사망할 것이라고 만류하였으나 입원 이틀 후 아내는 퇴원 후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귀약서약서에 서명하고 기어이 환자를 퇴원시켰고, 귀가하여 인공호흡 중단 5분 뒤 피해자는 사망하였다. 이후 의료진이 형사적인 살인방조로 기소가 되었고 의료진은 살인방조가 인정되었다.


  이후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행해졌다. 인간의 존엄은 사망시까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이 있는 경우 진정한 의사에 의하여 연명의료장치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존엄사제도가 현재 법률로 인정되고 있다.

    

. 처벌되지 않는 행위로서 자살

    

  1. 자살은 범죄인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 범죄가 된다는 데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십계명의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여 살인을 중한 죄로 여기고 있다. 범죄와 형벌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형법에서도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하여 살인죄를 처벌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란 행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해석한다. 형법의 살인죄 규정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지 말라는 금지규범이지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독약을 먹이거나 총으로 쏘거나 폭행을 가했으나 만약 사망에 이르지 않은 경우 살인미수죄로 처벌된다. 그런데 자살미수죄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살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렀다면 형벌의 대상이 없으니 당연히 처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중도 포기하였거나 죽음에 이르지 못한 경우 법은 그 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자살은 죄인가. 먼저 죄와 범죄를 구별하여야 한다. 기독

교적인 입장에서 죄(sin)와 법의 관점에서 범죄(sin)는 다르다. 죄가 된다고 하여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율법을 어긴 경우 죄가 인정되지만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율법 중에서도 도덕법인 경우에는 범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와 같은 율법은 죄이면서 범죄이다. 하지만 순수한 종교적 색채를 가지는 율법인 경우 예컨대 우상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와 같은 경우에는 죄이지만 범죄는 되지 않는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이나 동성애금지 율법은 죄이지만 범죄는 아니고 도덕규범의 범주에 들어간다.


  우리의 형법은 자살에 대하여 아무런 규정을 하고 있지 아니하다.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형법에 자살에 관한 규정이 없다면 당연히 범죄가 되지 않는다. 만약 자살을 범죄로 본다면 법은 당연히 자살미수죄도 처벌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렇게 보면 법은 자살을 범죄로 구성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 웨일즈의 경우 약 50년 전인 1961년까지 자살은 범죄였다. 자살은 신과 왕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 범죄로 처벌하였다. 심지어 자살한 사람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종교적 매장도 거부당하였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로 그친  Lionel Henry Churchill라는 영국인이 그에 대한 처벌로 6개월의 징역을 선고 받았다. 의사로부터 그가 정신병원에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증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교도소로 보내졌다. 이외에도 미수로 그친 다양한 자살시도에 대하여 형벌을 받았다.


  미국도 과거 대개의 주에서 자살 자체가 법률상 불법이었으나, 실제로 기소되어 처벌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대개의 주법에서 자살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Maryland 주에서는 여전히 13세기 영국 보통법을 채택한 이후 자신의 법률들을 개정해왔지만 여전히 보통법상 범죄를 범죄로서 인식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시도된 자살에 대하여 최소한 10여 차례 기소가 되었다. 북한의 경우 가족 중 한 명이 자살할 경우, 가족을 숙청하거나 유배시킨다고 한다.


  이러한 법률의 세계와 달리, 대개의 종교는 자살을 죄라고 여긴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생명의 존엄성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일반인들의 자살에 대한 인식은 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자살이 율법을 위반하는 죄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자신을 죽이는 행위가 십계명 중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에 해당하는가의 질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제6계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고,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자살을 결코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엄격하게 해석하였다. 이후 이 해석이 강하게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아퀴나스나 칼뱅은 십계명의 살인금지 계명을 자살과 관련시키지는 않았다. 다만 생명은 철저하게 생명의 창조주이고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 이는 깊은 생명 존중 사상의 선포이며 선언이다. 이 선언은 불가침의 진리로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며,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에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생명이든지 자신의 생명이든지 파괴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2. 자살을 돕는 것은 범죄이다


  이제 자살을 범죄로 인정하는 국가는 거의 없지만 자살을 돕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서 대개의 국가에서 범죄로 인정한다.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이 있는데 집안의 극구 반대로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자 어느 날 둘이 같이 자살하기로 마음먹고 둘이 동시에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쓰러져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여자는 죽고 남자만 살아난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경우에도 자살은 범죄가 되지 않으니 남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인가. 그런데 법은 남자에게 여자의 자살에 관여한 자로서 책임을 지운다. 즉 사람을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른바 자살방조죄이다. 자살방조란 이미 자살을 결의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 그의 자살행위를 도와서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에도 혼자 죽기 무섭거나 억울한 사람들은 자살카페에서 동반자살하는 사람을 모아 함께 자살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그 일부가 자살미수에 그친다면 그 사람들은 앞의 남자와 똑같이 자살을 방조한 자로서 자살관여죄에 해당되어 처벌받게 된다.


  자살의 방조뿐만 아니라 자살을 교사한 경우에도 범죄가 된다. 자살교사란 자살의 의사가 없는 자에게 자살을 결의하게 하여 스스로 자살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30세 아내를 둔 남편이 아내 몰래 사귄 애인이 처와의 이혼을 요구하며 결혼 독촉에 시달렸다. 이에 아내의 트집을 잡고 아내에게 애 하고 같이 죽어버려!” 라고 했다. 그 말에 아내가 흥분해 아이를 안고 아파트 10층에서 뛰어내려 아내와 아이가 사망한 경우 남편은 자살교사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왜 자살은 범죄로 구성하지 않았는데 자살을 교사하거나 방조한 경우에 처벌을 할까. 자신의 생명이 아닌 타인의 생명의 침해(사망)와 교사 및 방조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입법자는 자신의 생명침해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침해에 대해서는 처벌함으로써 생명권이란 보호법익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자살관여죄는 사람을 교사한 경우뿐만 아니라 자살을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경우 성립한다. 자살방조죄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 용이하게 실행하도록 함으로써 성립하며, 그 방법에는 자살도구인 총, 칼 등을 빌려주거나 독약을 만들어 주거나 조언 또는 격려를 한다거나 기타 적극적, 소극적, 물질적, 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되는데, 이 경우 그 방조 상대방의 구체적인 자살의 실행을 원조하여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의 존재 및 그 점에 대한 행위자의 인식이 요구된다. 즉 당사자의 자살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면 자살방조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사이트 내 자살 관련 카페 게시판에 청산염 등 자살용 유독물의 판매광고를 한 행위가 사기의 목적으로 행해졌고, 자살자들이 다른 경로로 입수한 청산염을 이용하여 자살하였다면 자살방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새벽에 두 사람이 고부간의 갈등문제, 경제문제 등으로 말다툼을 하다가 한 사람이 죽고 싶다거나 같이 죽자고 하며 기름을 사오라고 말하였고, 이에 다른 사람이 휘발유 1병을 사다 주었는데 그 직후에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자살한 경우 자살방조죄를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형법은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의 경우 형벌을 감경하고 있다. 예컨대 말기암으로 말미암아 극단적으로 고통받는 자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낫다고 여겨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부탁하여 죽음을 선택한 경우라든가 장애를 비관해 생을 마감시켜 달라는 30대 딸의 목을 조른 어머니의 경우 촉탁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한다. 촉탁살인이란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그 사람을 사망케 하는 행위를 말한다. '동의살인죄'라고도 한다.


  어떠한 사례에서는 자살방조 내지 촉탁살인인지 아니면 살인죄과 되는지 다투어지는 경우가 있다. 만약 남편이 처의 채무 문제로 함께 자살하기로 마음먹고 여행을 떠났다가 모텔에서 술을 마시던 중, 화장실에서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혼자 압박붕대로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 중인 처를 발견하였다. 벽걸이의 위치가 낮아 쉽게 죽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여 과도(과도)를 이용하여 압박붕대를 잘라 처를 내려 욕조 안에 옮겨 눕힌 후 베개를 가져와 그의 얼굴을 누르고 과도로 목 부위를 세 번 찔러 처를 살해한 사례가 있었다. 법원은 남편이 이미 자살을 시도한 처를 발견하고 방치하거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것을 넘어 처가 목을 매단 압박붕대를 칼로 끊고 그의 목 부위를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자살방조가 아닌 적극적인 살해행위에 해당하고, 나아가 처와 남편이 함께 죽자는 말을 넘어서 처가 남편에게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할 경우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하였는지가 불분명하다고 하여 살인죄를 인정하였다. 이 경우에는 형량이 자살관여죄나 촉탁승탁에 의한 살인죄의 경우보다 높게 된다.


  자살에 대한 허용적인 태도와 처벌적 태도도 당연히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 자살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의 하나인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논의되어 온 주제이며 사실 자살이 피하고 배척해야 할 행위인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서는 공감하고 이해하며 심지어는 권장할 수 있는 행위로까지 될 수 있는지 논쟁거리이다.

    

  . 자기결정권으로서 자살 인정 여부

    

  바야흐로 현재 자기결정권의 시대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삶을 자기가 주체가 되어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권리이다.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서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가치관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가족 중심의 공동체주의에서 급격하게 개인주의로 전환을 하고 이혼의 증가로 인한 가정의 해체는 심각한 사회의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자기결정권이 인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권으로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특별히 헌법재판소의 등장 이래 헌법재판소는 자기결정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가치관 변화의 선봉에 서고 있다. 법적으로 자기결정권의 부상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매개하여 사람들의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자기결정권의 영역에서 낙태죄가 논의된다. 태아를 생명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의 일부로 보아 여성에게 낙태의 자유를 인정하고자 한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존중은 간통제의 폐지와 동성애의 옹호를 낳기도 한다. 헌법재판소는 성적(性的) 자기결정권과 관련하여 보면, 종전에는 헌법 제10조의 개인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는 것이고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되어 있다. 간통죄를 규정한 형법 제241조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나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국가적·사회적 공동생활의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권리·공중도덕·사회윤리·공공복리 등의 존중에 의한 내재적 한계가 있는 것으로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라고 하여 합헌이라고 하였으나 이후 2015년에 간통죄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도 있다, 누군가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침해행위로서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기결정권의 근거를 헌법재판소는 행복추구권에서 찾는다.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제10조에서 도출한다. 행복추구권으로부터 일반적 행동권이 나오고 일반적 행동권의 일환으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자살도 자기결정권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까. 자기 생명에 대해서까지, 즉 삶을 유지할지 중단할지 결정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 것일까. 존엄사와 안락사 등의 문제에서 자기결정권이 문제된다. 생명권은 인간이 타인의 법익을 위하여 희생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절대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생명권은 인간의 존엄과의 관계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의미한 치료연명중단에 대해서는 현재 법률로 엄격한 요건하에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권과 관련하여서는 자기결정권이 우위에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법학자들이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자살을 정당화하는 견해는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의 장 아메리처럼 자살은 절대적 개성 즉 자기 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의 절대적 표현이며 절대적 정체성의 표현이다. 자살하겠다는 결정은 자유로운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살을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인정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자살을 오히려 자살관여방조행위나 촉탁승낙살인행위와 관련하여 언급하며 이 경우에도 죽음의 완성이 자기결정권의 행사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타인의 조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측면을 강조하여 제3자에 의한 생명권 침해행위로서 타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록 자기결정권을 오늘날 광범위하게 인정한다 할지라도 생명권은 원초적이며 기본적인 인권이기 때문에 자살은 자기결정권의 한계 영역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자살의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간다운 삶의 권리와 존엄한 죽음의 권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 삶과 죽음, , 종교

    

  현대사회에서, 특히 사회정치지형의 변화가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종교계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 과학문명과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종교는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종교계에 던지고 있다. 그러나 폴 틸리히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 혹은 신앙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다. 본래적 의미에서의 종교, 생동하는 신앙의 순기능은 자기중심적 존재인 인간을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실재 중심의 인간에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인간존재의 존재론적 전환은 무명과 죄에 매인 인간혹은 고해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인간을 개방적 존재로, 자유로운 존재로, 깨닫는 존재로, 사랑하고 자비행을 실천하는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존재의 변화능력이 종교의 진면목이며, 전통종교들의 교리체계나 상징 의례면에서의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종교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이다.


  삶과 죽음은 종교, 철학, 법학에서 중요한 아젠다이다. 다행스럽게도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자살예방법은 국민의 생명보호의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부과하고 있다. 즉 동법은 자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와 예방정책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이를 위하여 국가는 자살예방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자살예방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여야 한다.


  기본계획에는 생명존중문화의 조성, 자살상담매뉴얼 개발 및 보급, 아동청소년중년층노인 등 생애주기별 자살예방대책, 우울증 및 약물 중독관리 등 정신건강증진, 정보통신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자살예방체계구축, 자살위험자 및 자살시도자의 발견치료 및 사후관리, 자살자의 유족에 대한 지원 및 사후관리, 자살 감시체계의 구축, 자살 수단에 대한 통제, 자살예방교육 및 훈련, 자살예방에 대한 연구지원, 중앙 및 지역 협력기관의 지정 및 운영방안, 언론의 자살보도에 대한 권고기준 수립 및 이행확보 방안, 그 밖에 자살예방대책과 관련하여 필요한 사항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5년마다 자살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어야 하는데, 포함되어야 할 사항에는 성별나이학력, 혼인 및 취업상태 등 조사대상자의 일반적 특성 자살에 관한 생각, 자살을 시도한 횟수 등 조사대상자의 자살 위험요인 신문방송 및 인터넷 등 언론의 자살보도가 자살에 미치는 영향 그 밖에 자살실태 및 자살예방을 위한 서비스의 욕구와 수요를 파악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 등이다. 특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효과적인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하고, 자살시도자 및 그 가족 또는 자살자의 유족에 대한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하여 자살행위 전후의 심리행동변화 등을 바탕으로 자살원인을 분석하는 심리부검을 실시할 수 있다.


  또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인하여 자살 위험에 노출된 자에 대하여 필요한 의료적 조치가 적절히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하고, 자살위험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선별검사 도구를 개발하고 보급하여야 하며, 자살위험자의 조기 발견, 상담 및 치료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종교의 설 땅은 갈수록 줄어들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팽배로 절대적 진리와 권위가 부정되고 있다. 또한 사상적으로는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발흥으로 자기결정권의 범람을 초래하였고 이는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고 있다. 진리는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선천적 이유, 고정된 원리, 폐쇄된 체계, 모든 절대자를 배척하며 행위의 결과를 중시하는 미국식 실용주의적 사고가 각급 학교에서 배양되는 결과 종교적 관심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종교적 충실성과 연관된 생명 보존 믿음은 자살에 대하여 방어적 기제로서 작용할 수 있다. 생명의 주체로서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해서도 사랑과 자비와 관심의 대상으로 승화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한 때 세계 최고였던 교통사고 사망률을 제도와 도로망 등 인프라구축으로 획기적으로 줄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살문제에 대해서도 법적 제도적 장치의 완비와 종교계의 사전적 사후적 대응방안의 구체적 실시로 말미암아 조만간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다는 오명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이 회복되며 생명존중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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